UPDATED. 2024-04-27 18:15 (토)
지금 호주에선 '롱블랙' 커피가 대세, 아메리카노라고 부르지 마세요
지금 호주에선 '롱블랙' 커피가 대세, 아메리카노라고 부르지 마세요
  • 정종석
  • 승인 2023.12.21 11:52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년 만의 시드니여행 콩트...'커피제국' 스타벅스도 백기 든 호주의 커피문화...'아아' ‘얼죽아’ 등 아이스음료 인기 없어

[정종석 칼럼] ‘롱블랙’ 커피를 아시나요?

10년 만에 호주의 수도 시드니를 방문했다. 크리스마스가 눈앞인데도 여름철이어서 한낮 기온은 최고 섭씨 40도까지 올라간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한국의 올 겨울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생각이 나서 커피숍을 찾았다. 그런데 메뉴판부터가 다르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메리카노가 없다.

옆에 있던 현지교포가 말한다.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가 없습니다. 대신 롱블랙이라고 합니다. 호주인들이 즐겨하지는 않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아이스롱블랙이라고 부릅니다. ”

“아. 그렇군요.”

특이한 것은 커피를 주문할 때 이름을 물어보는 점이다. 순간 대금을 결제할 카드주인을 확인하는 절차로 이해했으나 알고보니 커피용기 표면에 이름을 써서 카운터에서 찾아가기 쉽게 한 것이라고 한다.

더욱 놀란 것은 세계 최대 '커피 제국' 스타벅스가 호주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소식이었다. 현지교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가 실패한 나라는 호주와 베트남 뿐”이라고 귀띔을 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선 웬만한 곳에서 자주 눈에 띄는 스타벅스가 어쩐지 시드니 거리에서는 잘 안보인다고 느껴졌다.

호주는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커피(coffee)와 차(tea)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커피를 부르는 명칭도 남다르다고 한다. 대표적인 호주 커피 명칭은 롱블랙(Long Black)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다.

롱블랙은 아메리카노와 비슷하지만 만드는 순서가 달라 크레마가 보존되고, 양이 더 적고 진해

롱블랙이나 아메리카노나 모두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따뜻한 물을 섞어서 만드는 커피이다. 다만 물을 넣는 순서가 다르다. 롱블랙은 우리의 아메리카노와는 물의 양이 차이가 있다. 물의 양이 아메리카노보다 적게 넣어서 좀 더 진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숏블랙(short black)도 있는데 이것은 에스프레소를 말한다. 

롱블랙은 아메리카노와 비슷하지만 만드는 순서가 달라 크레마가 보존되고, 양이 더 적고 진하다는 특징이 있다. 에스프레소를 고압 추출하면 원두 자체에서 나오는 얇은 크림 거품인 '크레마'가 생긴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 과정에서 이 크레마가 사라지지만, 롱 블랙은 뜨거운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는다. 따라서 크레마를 그대로 살린 채 연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와 물을 1:4~1:5 정도의 비율로 섞는 반면, 롱 블랙은 에스프레소와 물을 1:1.5~1:2 비율로 섞어 더 진한 맛이 난다.

얼핏 들으면 아메리카노나 롱블랙이 모두 업어치나 메어치나 마찬가지로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지교포의 설명을 들으면 맛이 다르다고 한다. 커피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냄새와 감촉, 미각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한 스타벅스 매장

지구상에서 스타벅스조차 콧대를 꺾지 못한 국가가 있다. 바로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호주와 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라고 한다. 특히 호주의 경우 스타벅스가 2000년 호기롭게 진출했지만 쓴맛만 보고 짐을 싸서 나왔다. 스타벅스는 호주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매장을 84개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글로리아진스 등 현지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첫 8년 동안 1억4800만 호주달러 적자를 봤다. 2008년 60여개 점포를 폐쇄하고 직원 685명을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2014년 남아 있던 점포를 전부 매각하며 호주 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스타벅스가 실패한 것은 이미 호주 고급 커피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실력 있는 개인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개성 있는 커피전문점이 넘쳐난다. 이는 1900년대 중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커피 문화가 빠르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플랫화이트'라는 호주만의 커피 음료를 전세계적으로 유행 시킬 정도로 커피 수준이 상당히 높다. 굳이 스타벅스를 가지 않더라도 맛있고 질 좋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영국문화권인 호주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커피문화도 미국의 영향권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이러한 호주의 커피 자부심으로 스타벅스는 '대량 생산하는 획일화된 맛의 커피'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커피의 맛과 향에 민감한 호주인들이 특색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보다는 특별함이 있는 그런 커피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호주커피 문화에서 또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아이스(ICE) 메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스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호주에서는 이탈리아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중적이지 않다고 한다.

시드니에 머물면서 남다른 호주커피로 그들의 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타벅스가 실패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원래 영국문화권인 호주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커피문화도 미국의 영향권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한때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유행할 때 경제관료들 가운데 옛 경제기획원에서는 빈잔에 맥주를 먼저 채우고 그 위에 부은 양주잔을 떨어뜨리는 ‘투하식’을 선호한 반면 옛 재무부에서는 빈잔에 양주를 채운 잔을 먼저 내려놓고 그 위에 맥주를 붓는 ‘장전식’을 즐겨했던 기억이 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는 점에서 장전식 폭탄주와 원리가 비슷하다. 반면 롱 블랙은 뜨거운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기 때문에 투하식 폭탄주와 원리가 같다고 해야 할 듯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과거에 이 폭탄주를 마실 때 투하식을 좋아했다. 그것은 일종의 폭탄주를 만들면서 맥주와 양주가 섞이는 과정과 이를 마시는 기분이 다르다는 점에서였던 것 같다.

관건은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에서 크레마의 존재 여부처럼 폭탄주도 장전식이냐 투하식이냐에 따라서 양주가 맥주에 섞이는 과정에서 알코올 맛의 미세한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호주 시드니에서>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