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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사법 리스크’야"...‘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 시급
"바보야, 문제는 ‘사법 리스크’야"...‘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 시급
  • 권의종
  • 승인 2024.01.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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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필수의료, 사법 리스크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환자와 의료인은 치료와 회복의 협력 관계, '햇볕정책'이 명약(名藥)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 차 전기모집 선발 결과가 처참하다. 소아청소년과 25.9%, 산부인과 67.4%, 외과 83.6%, 응급의학과 79.6% 등이다. 필수의료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환자들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지역 병원들은 의사를 못 구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의사 사법 리스크’가 꼽힌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023년 10월 전국 의사 1,159명에게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을 설문한 결과만 봐도 그렇다. ‘낮은 의료수가’라는 응답 58.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5.8%의 응답자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를 지목했다. 실제로 국내 의사 1,000명당 연간 기소 건수는 2.58명으로 일본(0.01명) 등에 비해 크게 높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감한 부분이다. 2023년 10월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에서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면책 범위 확대’를 언급했다. “소아청소년과에 의사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이대목동병원 사태 같은 것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일단 형사 리스크를 완화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관련해서 송사에 늘 휘말리고 법원, 검찰청,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게 되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안 한다”고 말했다. 

일부 로펌 등을 중심으로 소송을 부추기는 의료 환경도 문제다. 병원들이 법무팀을 가동해야 하고 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이 무시로 병원을 드나드는 현실이다. 의사들로서는 심리적 위축으로 방어적 진료에 나설 수 있다. 혹시라도 형사 처벌을 받을 경우 의사로서 앞길이 지장을 받고, 민사 책임을 물게 되면 평생을 빚쟁이로 살아갈 수 있어서다.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제도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충분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의 사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를 추진한다. 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1개월째 표류 중이다. 현행법 체계상 의사에만 형사 처벌 면제가 가능한지와 적용 범위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쟁점이다. 

보건복지부가 형사 처벌 특례법 추진 외에도 의료사고에 대한 중재·조정 체제 전환 및 책임보험·공제 기구 마련,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국가보상도 강화와 등 여러 방안을 제시한 만큼 대안이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의정(醫政) 간 미묘한 견해차도 감지된다. 정부는 의료사고가 발생 시 소송 외에는 분쟁을 해결할 절차와 제도가 충분치 않아 소송에 집중된다고 판단한다. 이에 의료진은 사법적 부담으로 인해 필수의료를 기피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신체를 침습하는 행위다. 원치 않는 결과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제도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충분하다. ‘소송 천국’ 미국도 다수의 주(州)에서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 의료과실로 형사 책임을 물으려면 의사가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고의로(Knowingly)’, ‘무모하게(Recklessly)’ 의료행위를 했는지가 입증돼야 한다. 민사소송에서도 의사가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손해배상 한도를 정해 놓은 주들이 많다.

일반 행정에서도 ‘적극 행정 면책 제도’를 운용한다. 공직자 등이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고의 또는 중과실 없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한 결과에 대해 그 책임을 면제하거나 감경해 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잘못의 책임을 면제함으로써 해당 공직자를 보호하고 다른 공직자의 적극적인 업무 수행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사법 리스크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필수의료 붕괴 못막아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도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당장의 대책은 못 된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최소 10년 뒤에나 의사로 활동이 가능하다. 저출산에 따른 의료 수요 감소도 고려의 대상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의 저위 시나리오에 따르면 출산율이 0.6명 선이 깨진다. 2026년에 0.59명까지 내려갈 거로 내다 본다. 출생아 수가 2060년 9만8천 명, 2070년 8만8천 명, 2072년 8만7천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같은 초저출산 상황에서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에 지원자가 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의 탁상행정이다. 사법 리스크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사회 전제적으로도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재수·반수생 증가 등 입시 과열, 이공계 인재유출과 공백, 인기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국민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의사 또한 자긍심을 갖고 진료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공정하고 충분한 보상체계 구축, 전공의 업무부담 경감 등 근무여건 개선, 상생·협력의 의료전달체계 실현이 전제돼야 한다. 

환자와 의료인은 치료와 회복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진 협력자 관계다. 환자는 의료인을 신뢰해야 치료할 수 있다. 의료인 또한 환자가 있어야 성취감을 갖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환자와 의사 모두 윈윈하는 길이다.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건 강한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살. 사법 리스크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 햇볕정책은 북한 말고 의료에 잘 듣는 명약(名藥)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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