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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의 허(虛)와 실(實), 신용사면의 명(明)과 암(暗)
관치금융의 허(虛)와 실(實), 신용사면의 명(明)과 암(暗)
  • 권의종
  • 승인 2024.01.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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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은 정부가 내고, 위험은 은행이 지는 금융정책...‘신용사면’도 부적절한 표현, ‘신용회복’이 맞는 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정부의 금융 개입과 간섭이 잦다. 신용사면도 관치의 연장선 위에 있다. 금융위원회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금 연체 이력 정보를 삭제하기로 했다. 2021년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2,000만 원 이하 연체자 중 오는 5월까지 연체금 전액 상환자가 사면의 대상이다. 정부는 이번 사면으로 코로나19로 고통받은 소상공인 29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본다. 

연체자 250만 명의 신용점수가 상승, 저금리 대환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15만 명이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충족하고 25만 명의 대출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위는 이번 사면 조치가 “예외적인 경제 상황에서 소액채무를 연체한 서민·소상공인의 재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건전한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는 법. ‘빚을 갚지 않아도 결국에는 정부가 해결해 준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 또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으로 금융사의 신용평가체계가 왜곡돼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신용점수가 올랐다고 차주의 상환 능력이 높아지지 않는 터. 그 틈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금융권의 몫이 되고 말 것이다. 

금융권의 속앓이가 심하다.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 주도의 정책 위험을 민간기업인 금융회사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위험은 은행이 지는 꼴이다. 신용이 회복된 연체자가 다시 대출을 일으키면 부채 관리가 어려워지고, 차주의 신용평가에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불편한 속내다.

금융 접근성 '기대',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우려'

제2금융권의 고민은 더 크고 깊다. 신용사면이 수익성과 건전성의 동반 악화를 부를 수 있어서다. 고객의 신용점수가 오르면 우량 차주가 은행권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도입된 온라인·원스톱 대환대출에 제2금융권은 고객 이탈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실적 감소가 방증하는 바다. 저축은행의 여신 잔액은 지난해 11월 말 106조2,555억 원으로 1년 전보다 8.6% 줄었다. 수신 잔액도 110조7,858억 원으로 같은 기간 8.7% 감소했다. 

연체 정보는 신용관리에 치명적 요인이다. 통상 3개월 이상 대출 연체가 발생하면 신용정보원은 최장 1년간 연체기록을 보존하고, 금융회사와 신용평가사 등과 공유, 최장 5년간 활용한다. 연체 이력을 보유한 차주는 추가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 사용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최근 3개월 이내 10일 이상 연체가 있으면 신용보증기금에서는 신규나 증액 거래가 불가능하다. 

신용사면에 따른 금융회사의 ‘꼼수’도 경계의 대상이다. 신용사면으로 신용점수가 올라가면 금융회사가 가만있지 않을 수 있다. 부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출한도나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등 심사 기준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되면 피해가 금융소비자 전체에 돌아가고 만다. 

어려워도 대출 원리금을 제때 꼬박꼬박 갚아 온 차주들에는 역차별이다. 이들로서는 정부가 인제 와서 연체 사실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게 청천벽력 같은 말로 들릴 것이다. 원칙과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 우대를 받기는커녕 불이익을 당하는 것보다 더 황당하고 억울할 노릇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되면 앞으로는 누구도 정부 말은 믿으려 하지도 따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순기능 살리고 역기능 줄이는 ‘운용의 묘’가 관건

신용사면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역대 정부들이 즐겨 써먹은 단골 메뉴다. 2007년 ‘720만 명 신용 대사면’ 공약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도덕적 해이 논란과 함께 72만 명 지원으로 사면 대상을 줄여 시행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도 신용사면을 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또한 취약 차주의 신용회복을 위한 사면을 실행했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20개월 동안 2,000만 원 이내 연체자 250만 명이 대상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빚 탕감이 속도를 낸다. 2022년 7월 금융위원회는 투자 실패 등에 시달리는 저신용 청년의 채무 이자 부담을 최대 50% 경감하고 연체이자를 전액 감면하는 ‘청년 특례채무조정’을 선보였다. 서울회생법원은 가상화폐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금을 개인회생 변제금에 반영해주기로 하며 ‘코인 투자 실패로 인한 회생’ 문턱을 낮췄다. 2조 원 규모 상생금융의 일환으로 이자 캐시백을 지원하고 이번에 또 신용사면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도 시행도 하기 전에 초를 치는 얘기일 수 있으나, 신용사면이 기대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최대 2,000만 원에 이르는 연체 대금을 마련하는 게 자금난에 허덕이는 차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은 급전을 끌어다 연체를 막는다고 해도 사업 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한 도로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기껏 마련한 정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말을 잘도 지어낸다. 용어 오용이 심하다. ‘신용사면’도 부적절한 표현이다. 사면(赦免)의 의미는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함을 말한다. 그리고 사면의 대상은 통상 접두어로 표기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번에 사면할 대상이 신용이 아닌 연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연체사면’이 적절한 표현이고 신용이라는 말을 꼭 쓰려면 ‘신용회복’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용어야 어찌 되든 어떠하랴. 이왕 제도 시행을 맘먹었으면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줄이는 운용의 묘가 관건이다. 꿩 잡는 게 매 아닌가.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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