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강승조 기자] 국내 중견 철강회사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에서 근무하다 3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유모씨(36)가 상사들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한 정황이 유서와 영상을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지난 2018년 11월25일 금강 하구 한 공터에 세워진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유씨에 대해 지난해 1월 근로복지공단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맞다고 인정했다. 유족은 관련 상사들을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으나 경찰은 "오래 전 일이라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이에 유족들은 최근 검찰에 재조사 해 달라며 항고장을 내고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황이다.
지난 24일 MBC가 공개한, 25분 분량의 유씨 휴대전화 마지막 촬영 영상과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를 통해 유씨가 상사들로부터 당했던 성추행과 괴롭힘의 구체적 기록이 드러났다.
특히 유씨가 입사한 지 두 달째였던 2012년 6월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 동료들과의 야유회 사진도 공개됐는데 여기에는 9명의 남성 중 2명만 옷을 입고 있고 나머지 사원들은 나체 상태로 가랑이만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유씨는 유서에서 단체 나체사진에 대해 "(옷을 입고 있던 남성 중 한 명인) A씨가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라며 "회사 PC에 더 있을 테니 낱낱이 조사해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적었다.
유씨는 또 "입사한 달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는 등 입사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괴롭힘을 저질렀다며 반장급인 A씨를 지목했다. 유씨는 "2016년 12월10일 16시30분쯤 한 복집에서 볼 뽀뽀, 17시40분쯤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 등 구체적인 시기와 행동도 적시했다.
유씨는 야유회 사진에서 옷을 입고 있던 나머지 남성 B씨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라"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유씨 유족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가족들한테는 '너무 힘들다', '날 욕하고 괴롭힌다' 이 정도로만 얘기하고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다"며 "그렇게까지 심각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얼마나 맺힌 응어리가 컸으면 안 좋은 기억들만 얘기하고 그런 선택을 했나 싶다"고 밝혔다.
세아베스틸 측은 유씨가 사망한 이후 2019년 4월 뒤늦게 조사에 나섰으나 가해자들의 황당한 변명만 수집됐다.
A씨는 야유회의 나체사진에 대해 "공 차고 더워서 물 속에 들어가려고 벗은 것이지 내가 시킨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반복됐던 '볼 뽀뽀' 성추행에 대해선 "어제도 우리 딸에게 뽀뽀해주고 왔는데 큰일났다"고 답변했다. B씨는 유씨의 성기를 만진 성추행과 관련 "말수가 적은 고인을 살갑게 대하려 한 것"이었다고 답했다.
사건을 조사한 노무법인은 조사 보고서에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수치심에 공감 못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월 유씨의 죽음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맞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