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이 추진한 가장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이자 가장 웅장한 도화지였다. 바다를 메워 새로운 국토를 만들고, 그 위에 미래 산업과 국가 성장동력을 심겠다는 구상은 언제나 장대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수식어 아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북아 경제허브, 국제자유도시, 친환경 미래도시, 글로벌 신산업 중심지라는 청사진이 쉼 없이 제시됐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국민이 마주한 새만금의 현실은 여전히 황량하다. 개발계획은 수차례 수정됐고, 예산은 정치 논리에 따라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사업은 속도를 잃었고, 기대는 피로감으로 바뀌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미래가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아직 채워지지 않은 광활한 빈 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비전은 넘쳤지만 실행은 부족했고, 전략은 있었지만 완수는 없었다. 결국 새만금은 국민에게 '그림 속의 떡', 곧 화중지병(畫中之餅)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화려한 선언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새만금이 더 이상 정치권의 희망 고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전을 말하는 사업이 아니라 결과를 증명하는 사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무엇'보다 '어떻게'를 증명하라
새만금 개발이 장기간 표류한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목표만 있었을 뿐, 이를 뒷받침할 실행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유치할 것인지에 대한 구호는 넘쳐났지만, 어떻게 투자자를 설득하고 어떻게 산업을 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는 부족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방향이 수정되고 우선순위가 뒤집히는 구조 속에서 국가 프로젝트는 정치 일정에 종속돼 왔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담겠다는 만능 개발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택과 집중 없는 계획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차전지, 재생에너지, 첨단소재, 데이터센터 등 새만금이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명확히 설정하고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다. 예산이 정치에 따라 흔들리고 정책이 선거 때마다 바뀌는 곳에 장기 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기반시설 구축 일정, 재정 투입 계획까지 법률과 제도로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은 비전에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은 실행 가능한 환경에 투자한다. 이제 새만금은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겠다'는 실행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거대한 청사진보다 작은 성공이 더 강하다
새만금을 세계적 산업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현실과 속도다. 정주 여건은 아직 충분하지 않고 교통망과 산업 생태계 역시 완성 단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글로벌 기업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거대한 도시를 한 번에 완성하려는 조급함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 새만금에 필요한 것은 '스몰 윈(Small Win)' 전략이다. 기반시설이 갖춰진 특정 권역을 핵심 거점으로 삼아 가장 먼저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공장이 실제로 가동되고, 근로자가 출근하며, 제품이 생산되고, 수출과 고용이 창출되는 살아 있는 산업단지를 완성하는 것이 거창한 마스터플랜보다 훨씬 강력한 투자 신호가 된다.
투자는 약속이 아니라 성공 사례를 따라 움직인다. 작은 성공은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더 큰 투자를 불러온다. 새만금의 진정한 경쟁력은 넓은 면적이 아니라 성공을 확산하고 복제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에서 나온다. 단 하나의 성공 모델이 수백 장의 홍보 책자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MOU가 아니라 공장이다...시장은 결과만 믿는다
새만금은 그동안 수많은 투자협약(MOU)과 대규모 투자 발표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실제 착공과 생산으로 이어진 사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숫자는 화려했지만 현장은 조용했고, 보도자료는 넘쳐났지만 시장의 신뢰는 따라오지 않았다.
시장은 냉정하다. 보도자료보다 완공된 도로를 믿고, 투자설명회보다 실제 가동되는 공장을 믿는다. 항만·공항·철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트라이포트 인프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첫 입주 기업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순간 비로소 시장은 새만금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평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보여주기식 투자 실적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전력 공급, 용수 확보, 물류비 부담, 규제 충돌, 인허가 지연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정이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완수력이고,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새만금 브랜드의 가치는 화려한 홍보가 아니라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는 신뢰에서 만들어진다. 공장 하나가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은 수십 차례의 투자설명회보다 훨씬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군산시 제공]
새만금은 비전의 높이만큼 실행의 깊이를 더해야
새만금은 대한민국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성장 실험장이자 국가 경쟁력을 시험하는 무대다. 그러나 실행 없는 비전은 희망이 아니라 국가적 비용이다. 더 이상 '미래'라는 단어 뒤에 숨어 현재의 지연과 무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이제 새만금은 비전의 높이만큼 실행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현장의 한계를 직시하고 작은 성공을 축적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결과로 시장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림 속의 떡은 아무리 화려해도 배고픈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새만금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심장으로 다시 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청사진이 아니다. 흙을 파고, 길을 내고, 공장을 세우며, 끝까지 완수하는 집요한 실행력이다. 환상이 국가를 성장시키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실체뿐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