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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 (2) 국민성장펀드, 성장의 마중물인가
[생산적 금융] (2) 국민성장펀드, 성장의 마중물인가
  • 나병문
  • 승인 2026.09.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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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칼럼] 지난 글에서는 금융의 본질과 생산적 금융의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장사가 아니라 사회의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전제에서 이번 글에서는 돈의 흐름을 실제로 바꾸기 위한 장치인 국민성장펀드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국민성장펀드는 생산적 금융을 구체화하기 위한 대표적 정책 수단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이차전지, 로봇, 방산, 우주항공 같은 미래 산업에는 대규모 장기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산업은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수익이 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실패 가능성도 크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단기 성과 중심 금융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성장펀드의 도입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미래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와 금융권, 민간 자본이 함께 공급하겠다는 구상은 한국 금융의 자금 배분 방향을 바꾸는 상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자금이 부동산이나 안정적 담보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과 기술, 기업과 인재로 흘러가도록 하는 방향 전환이기 때문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생산적 금융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금의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의 질이다. 어느 산업, 어느 기업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공급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국민성장펀드가 성장의 마중물이 되려면, 이전 정책금융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성장의 마중물이 되려면

정책금융은 성장의 물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모든 자금을 대신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공 부문이 초기 위험을 완충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민간 자금이 함께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도 마찬가지다. 펀드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깨우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 대상 선정이 중요하다. 이름만 첨단산업이라고 해서 모두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은 아니다. 기술력, 시장성, 사업화 가능성, 경영자의 역량, 산업 생태계와의 연결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금융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금을 필요한 곳으로 보낼 수 없다. 숫자만 보면 기술의 가능성을 읽기 어렵고, 낙관적 전망에 취하면 시장의 냉정함을 놓치기 쉽다.

장기 자금의 성격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미래 산업은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지 않는다. 연구개발, 시설 투자, 인력 확보, 시장 개척을 거쳐야 비로소 성과가 나타난다. 특히 혁신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는 기술은 있으나 매출은 부족하고, 가능성은 크지만 제공할 담보가 부족한 시기다. 그때 필요한 것이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인내 자본이다.

국민성장펀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재·부품·장비 기업, 중소·중견기업, 연구개발 기업, 지방의 산업 기반, 전력과 용수 같은 인프라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나아가 자금 배분의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지역이나 업종을 넓힌다는 명분으로 자금을 나눠먹기식으로 분산해선 안 된다. 선택과 집중이 뒷받침될 때 국민성장펀드는 실질적인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정책금융의 착시를 넘어서

정책금융에는 늘 착시의 위험이 따른다. 돈을 많이 공급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자금의 투입 자체가 기업의 성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원 규모가 크다고 산업 경쟁력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성장펀드 역시 규모보다 실제 자금 배분의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적절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금융이 실패한 기업을 무조건 살리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에 계속 자금이 들어가면 시장의 규율은 약해지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반대로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일시적 어려움 때문에 무너지는 일도 막아야 한다. 금융의 역할은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위험과 감당해서는 안 되는 위험을 구별하는 일이다.

민간 금융의 참여 방식도 중요하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연기금, 벤처캐피털은 각기 다른 역할과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공공 부문은 초기 위험을 완충하고, 민간 부문은 투자 판단과 사후관리의 전문성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고 손실은 무조건 공공이 떠안고 수익은 민간이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이름이 붙은 펀드라면 책임도 더 분명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는 생산적 금융의 중요한 실험이다. 성공한다면 한국 금융이 미래 산업을 키우는 자금 배분 시스템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큰돈을 투입하고도 산업의 체질을 바꾸지 못한 정책금융의 또 다른 착시로 남을 것이다.

결국 국민성장펀드의 성패는 규모보다는 방향, 속도보다는 지속성, 구호보다는 책임에 달려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 금융이 부동산 금융을 넘어 산업 금융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스토아 아카이브 대표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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