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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후예'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도약과 대한민국의 도전
'바이킹 후예'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도약과 대한민국의 도전
  • 정종석 기자
  • 승인 2026.09.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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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낯설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푹 빠지는 신비한 북유럽의 매력...스칸디나비아에서 느끼는 감흥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세 나라 인구를 모두 합쳐도 한국 인구(약 5,100만 명)의 절반도 안돼
팽창하는 제국이 아니지만 적은 인구 갖고도 진보하는 민주국가, ‘강소국(强小國)’이 대한민국의 미래상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오르 전경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우리에게 있어 북유럽 여행은 왠지 낯설기만 하다. 역사적으로 유럽하면 영독불(영국,독일,프랑스)이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세 나라가 주로 인류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유럽 북부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여행한 뒤 이런 선입견이 바뀌었다.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푹 빠지는 신비한 북유럽의 매력에 정신을 빼았겨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북유럽 여행, 그 신비한 스칸디나비아의 감흥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이곳은 한때 바다를 지배했던 바이킹의 주무대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 3대 강국(이들 세나라와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합친 5개국을 이른바 '노르딕컨트리'로 부름)이 번갈아 가며 유럽의 지배권을 거머쥐었던 영욕의 땅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는 북위 55∼71°에 위치, 여름에는 해가 길어 오후 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현상이 나타나고,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등 신비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

이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공통점은 UN이 발표하는 인간행복지수 상위권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국기에는 북유럽 국가 공통의 국기인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문양이 들어있다. 초기 바이킹시대인 9세기경 독립국가를 이뤄 13~14세기 경에는 북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강대국이었지만 1523년 스웨덴이 독립해 나가고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의 패전으로 노르웨이를 잃으면서 세력이 약해졌다.

노르웨이의 주요 산업은 석유·가스, 해상 및 해양 플랜트, 수산·양식업, 청정에너지

# 스칸디나비아 3국 가운데 노르웨이는 자연경관과 스케일이 가장 압도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게이랑에르 피오르와 네로이 피오르는 절벽과 폭포의 웅장한 풍경을 보여준다.

크루즈나 산악열차인 플롬선을 타고 이 비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본 결과 자연의 위대함에서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수억년동안 이루어진 피오르의 비경 속에서 인간은 다만 순간을 스쳐지나가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노르웨이가 자연경관만 갖고 먹고사는 나라가 아니다. 노르웨이의 주요 산업은 석유·가스, 해상 및 해양 플랜트, 수산·양식업, 수력 발전 기반의 청정에너지 및 금속 산업이다. 천연자원을 활용한 산업과 고도의 해양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이 압도적이다. 북서유럽 최대의 산유국이자 주요 가스 수출국이다. 국가 GDP의 약 20%,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영 에너지 기업인 에퀴노르 (Equinor) 등이 대표적이다.

수력 및 재생에너지 사업도 활발하다.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전체 전력 생산의 90% 이상을 수력 발전으로 충당한다. 국영 수력 에너지 기업 스태트크래프트 (Statkraft)가 중심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친환경 에너지와 해상풍력 등 미래 산업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수산업 및 해양 산업이 발달했다. 차고 깨끗한 해역을 바탕으로 연어 등 양식업과 어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인 선박 보유국으로 조선업 및 관련 조선기자재 산업도 함께 강세를 보인다. 저렴한 수력 전력을 바탕으로 알루미늄 생산(노르스크 하이드로) 등 금속 가공 및 정유·화학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경기장

한국은 무더운 여름날씨...노르웨이는 시원한 호수-맑은 공기로 피서지로 최적

# 인천공항을 출발해 노르웨이에 도착한 우리는 오슬로에서 일박한 뒤 버스를 타고 게이랑에르 피오르를 찾아 나선다. 길은 E6 고속도로를 타고 하마르와 릴레함메르(Lillehammer)를 거쳐 오따(Otta)로 이어진다. 한국은 늦여름 무더운 날씨인데 노르웨이는 시원한 호수와 맑은 공기로 여름 피서지로 최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먼저 릴레함메르에 들렀다. 이 곳은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릴레함메르는 뮈외사 호수 북쪽 언덕에 자리 잡은 중소도시로 인구는 2만7000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제17회 동계올림픽을 이웃 하마르, 귀에빅, 외에르, 링게부 등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당시 6개 스포츠 분야 61개 종목에서 경기가 벌어졌고, 쇼트트랙이 처음으로 정식종목에 채택됐다. 그 결과 쇼트트랙 경기에서 채지훈, 김기훈, 전이경 등이 금메달을 차지, 우리나라가 겨울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한국은 숏트랙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 참가국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슬로프 옆에 관광객들을 위해서 설치된 스키점프대에 올라가서 각각 활강을 시작하는 포즈로 기념촬영을 하며 활짝 웃었다. 스키점프대는 옆에서 보면 커다란 미끄럼틀 같고, 밑에서 보면 긴 형태의 쓰레받기 같다. 정점에 선수가 서서 경사진 활주로를 따라 힘껏 미끄러지다, 하늘을 난 다음 바닥에 착륙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어 대망의 피오르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피오르는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좁고 긴 협곡을 말한다. 피오르는 2단계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1단계에서 빙하가 산골짜기 사이를 이동하며 땅을 깎아낸다. 2단계로 빙하가 깎아낸 U자형의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온다. 따라서피오르는 수심이 깊고 길이가 길다.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는 수심이 1,300m나 되고, 길이가 205㎞에 이른다.

대망의 피오르를 향한 여정...열한 구비 고갯길의 정상 아래로 게이랑에르 피오르

피오르가 가장 잘 발달한 지역은 노르웨이와 그린란드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위도가 낮고 접근성이 좋을 뿐 아니라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피오르를 영어식으로 피오르드라고 발음해 왔다. 그러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피오르드가 아닌 피오르라고 발음한다. 우리도 그들의 발음을 존중, 피오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링에에서 에이즈달을 거쳐 말로만 듣던 게이랑에르(Geiranger)를 찾아간다. 나도 버스에서 내려 페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2층 갑판으로 올라가면 선실이 있다. 차는 페리의 가운데 공간으로 들어간다. 배가 출발하자 선실 밖으로 나와 주변 경치를 살펴본다.

안개가 끼고 빗방울이 떨어져 조망이 좋지를 않다. 10분이 지나 배는 에이즈달에 닿는다. 이곳에 내리니 게이랑에르로 향하는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에이즈달에서 남쪽으로 25㎞를 가야 게이랑에르에 이를 수 있다.

처음에는 길이 하천을 따라 이어져 있어 평탄한 듯하지만 이내 산길과 터널이 나온다. 길은 에이즈 호수를 지난 다음 외르네베겐(Ørnevegen)에서 다시 구절양장의 굽이길을 만난다. 열한 구비 고갯길의 정상에 이르면 그 아래로 게이랑에르 피오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고개 주변에는 해발 1500m 전후의 산들이 감싸고 있다.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었다. 이곳 고갯마루에 잠시 쉬었으나 안개비 때문에 아래 호수가 흐릿하게 보인다. 맑은 날씨에 이곳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슬로 시청 전경. 이곳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로는 매년 12월 10일에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가장 유명하다.

송네 피오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아울란 피오르와 내뢰이(Nærøy) 피오르

#고개를 내려와 호수를 따라 게이랑에르 피오르 페리 선착장으로 간다. 호숫가에는 오토캠핑장이 있고, 대형 크루즈선도 정박해 있다. 요스테달 국립공원의 뵈야 빙하라는 하늘색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푸른색의 뵈야 빙하가 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사오 분을 걸어가니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가 보이고, 그 위 바위산에 하얗고 푸른 얼음 빙하가 골짜기에 걸쳐 있다.

먼저 신성한 빙하를 쳐다보고, 호수로 가 물에 손을 담근다. 차가운 기운이 몸으로 쫙 끼쳐온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 여름이라 빙하가 많이 녹아 빙하의 규모가 줄어들고 호수의 수량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지금도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가늘고 긴 물줄기를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뵈야 빙하의 크기도 자꾸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는 5번 도로를 따라 송달(Sogndal) 방향으로 간다. 송달부터는 송네 피오르 권역이 된다. 이곳에서 호수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카우팡어를 지나 만헬레르(Mannheller)에 이른다. 이곳에서 우리는 또 다시 페리를 타고 송네 피오르를 건너 포드네스(Fodnes)로 도착한다. 이곳도 배로 2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다. 포드네스에는 농가 몇 채와 등대만이 보인다.

포드네스에서 내린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 래르달(Lærdal)로 간다. 래르달은 아울란(Aurland), 구드방엔(Gudvangen)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 지역에 속한다. 우리는 래르달에서 아울란, 베르겐(Bergen)으로 이어지는 E16번 도로를 탄다. 이 도로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래르달 터널이 있다. 터널 길이가 무려 24.5㎞나 된다. 이 터널을 나오자 호숫가의 아울란이 나온다.

김대중 대통령, 지난 2000년 12월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 

사람들은 송네 피오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아울란 피오르와 내뢰이(Nærøy) 피오르라고 한다. 그리고 아울란트 피오르의 백미는 아울란방엔(Aurlandvangen)과 플롬(Flåm)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내뢰이 피오르의 백미는 구드방엔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두 피오르를 보지 않고는 송네 피오르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산악열차여행도 노르웨이 관광의 특색이다. 플롬에서 뮈르달(Myrdal)까지 가는 열차를 탄다. 플롬 열차는 송네 피오르의 하이라이트로 알려져 있다. 해발 2m의 플롬에서부터 해발 865m의 뮈르달까지 20.2㎞를 올라간다.

귀로에 다시 들른 오슬로 시청은 1931년 지어지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은 1950년 5월 15일이다. 1940년 독일의 침공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전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은 오슬로가 생긴지 9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오슬로 시청은 시청사, 시의회, 공식행사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쓰인다.

오슬로 시청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로는 매년 12월 10일에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가장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0년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되고, 나머지 노벨상(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경제학)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이유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과 당시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 때문이다.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평화상 심사와 수여를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맡긴다고 적었다. 노벨이 생존하고 유서를 작성할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하나의 연합 국가였다. 당시 노르웨이는 평화롭고 민주적인 분위기가 강해 평화상을 맡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

바이킹의 왕 '크누트', 영국을 합병하여 거대한 덴마크 왕국의 기틀을 마련

# 우리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와 햄릿의 주무대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는 바다의 제왕 바이킹이 주름잡았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관문이자 유럽 대륙의 중북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북유럽의 하늘 입구'라고 불린다.
 
우리는 코펜하겐에 오자마자 이곳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을 찾아 갔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테마로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이 제작한 청동상이다.
 
멀리 코펜하겐 항구가 푸른 물결로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가운데 해안가 한복판에 작은 물체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파를 헤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 유명한 인어공주가 바다를 등지고 요염한 자태로 앉아있다.
 
가냘픈 얼굴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육감적인 몸매였다. 한손을 바위에 얹고 다른 한손은 살짝 무릅 위에 걸친 채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살며시 포개어 놓은 미끈한 두 다리가 인어의 꼬리지느러미로 이어져 있다. 전체 길이는 80m에 불과해 생각보다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지닌 애절한 이미지는 강렬하게 풍겨났다.
 
덴마크의 역사는 융성과 쇠퇴의 반복이었다. 일찍이 거친 바다를 무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바이킹의 왕 '크누트'는 영국을 합병하여 거대한 덴마크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13세기 북유럽 일대와 독일 북부, 발트해 연안 전역을 차지하였고, 1381년 노르웨이를 합병, 1502년 스웨덴을 정복하여 북유럽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덴마크, 제약·바이오, 신재생에너지, 해운 및 기계·전기기기 등 다양한 분야서 세계적인 경쟁력

현재 덴마크는 독일과 연결된 유틀란트 반도와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 섬, 핀 섬, 롤란 섬 등 483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 캐나다 북동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와 북대서양의 페르 제도를 해외영토로 보유하고 있다.

학창시절 덴마크를 낙농업이 발달한 국가로만 배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약·바이오, 신재생에너지, 해운·물류, 정밀 기계 부품 중심의 고부가가치 지식 기반 제조 및 서비스업이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이다. 인구 약 600만명의 소국임에도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존재한다.

덴마크는 낙농업 외에도 제약·바이오, 신재생에너지, 해운 및 기계·전기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적인 당뇨병 치료제 및 비만 치료제(예: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오젬픽)를 생산하는 티스토리 블로그 등에서 소개되듯 글로벌 제약 강국이다.

친환경 에너지 선도국이다. 세계적인 풍력 터빈 기업(베스타스 등)과 해상 풍력 발전 기술을 보유했다. 또 세계적인 해운 선사 머스크(Maersk)를 중심으로 글로벌 해운·물류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용 기계, 전기기기, 광학 의료기기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을 차지한다.

여행중 만난 덴마크 사람들은 오랜 농경사회와 지속된 전쟁, 농지 개간 등을 거치며 검소함이 몸에 배어있으며 다른 나라의 문화도 스스럼없이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덴마크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전거와 동고동락한다. 수도인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전용도로와 빽빽하게 들어찬 자전거 보관소가 자리잡고 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대도시의 거리 전체가 거대한 자전거 행렬을 이룬다. 주의할 점은 사람보다 자전거에 우선권이 있어 보행로를 드나들 때 무척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안의 알프레드 노벨의 동판 초상

현재 스웨덴 경제를 이끄는 핵심산업으로는 엔지니어링 및 운송 장비 산업

# 덴마크에 이어 방문한 스웨덴의 주요 산업이 기계 및 자동차(엔지니어링), 정보통신기술(ICT), 제약·생명과학, 임업 및 철강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오늘날에는 고부가가치 기술과 제조업을 선도하는 수출 지향형 글로벌 혁신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 스웨덴 경제를 이끄는 핵심산업으로는 엔지니어링 및 운송 장비 산업이 꼽힌다. 스웨덴 제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전체 산업 부가가치의 약 절반을 창출하는 전통적인 핵심산업이다. 세계적인 상용차 및 승용차 브랜드인 볼보(Volvo)와 스카니아(Scania)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산업 공구 기업인 아트라스콥코(Atlas Copco)와 베어링 제조사 SKF, 그리고 전투기 등을 생산하는 방산 기업 사브(SAAB)가 이 분야를 이끌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및 디지털 산업도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유럽 내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첨단 산업군이다. 글로벌 통신 장비 기업인 에릭슨(Ericsson)을 보유하고 있으며, 5G 및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기술의 중심지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세계적인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 등 수많은 글로벌 IT 유니콘 기업을 배출했다.

스웨덴은 과거에는 패권 국가로 스칸디나비아를 장악했다. 1520년 스웨덴은 덴마크가 주도하는 칼마르 연맹에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을 이끈 구스타프 1세가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하며 스웨덴은 독립했다. 독립한 스웨덴은 곧 제국으로 성장했다. 스웨덴은 핀란드나 에스토니아를 넘어 중부 유럽까지 영향력을 뻗쳤다. 포메른을 장악했고 30년 전쟁에도 개입했죠. 북아메리카나 서아프리카에 식민 도시도 건설했다.

스웨덴은 북유럽의 패자였다. 무기를 개발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국력을 집중했다. 스웨덴의 강력한 군사력은 주변국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정복 군주와 명재상의 시대가 이어졌다. 한때는 스톡홀름의 현재 왕궁도, 북유럽과 동유럽을 장악한 패권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동쪽에서는 러시아가 성장하고 있었다. 끝없이 갈등하던 스웨덴과 러시아는 1700년 결국 전면전에 나섰다. '대북방 전쟁'이었다.

스웨덴과 러시아, 1700년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전쟁 끝에 러시아가 승리

20년 넘게 이어진 전쟁 끝에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다. 북유럽의 패권자가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이후 스웨덴 제국은 축소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식민지는 하나둘 독립하거나 다른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우연한 사건에 가까웠다. 스웨덴의 국왕 칼 13세에게는 후사가 없었고,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가져온 것도 이 베르나도트의 공이었다. 베르나도트는 곧 나폴레옹을 배신하고 반프랑스 동맹에 가담해 승전을 이끌었다. 베르나도트는 칼 13세가 사망한 뒤 칼 14세가 되어 스웨덴의 왕위에 오른다. 현직 국왕인 칼 16세가 이 베르나도트의 6대손이다.

스웨덴 방문때 본 경이적인 현장은 바사박물관이었다. 수도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국립 박물관인 바사 박물관(Vasa Museum)에서는 1628년 첫 항해(처녀항해)에 나선 지 불과 1마일(약 1.6km)도 가지 못하고 침몰했던 스웨덴의 호화 전함 바사호(Vasa)를 원형 그대로 복원, 전시하고 있었다.

당시 스웨덴과 전쟁 중인 폴란드를 압박하러 발트해를 가로지를 예정이었던 바사호는 출항 후 겨우 1300m가량 앞으로 나아가다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398년의 시간을 지나 우리는 이제 스톡홀름에서 바사호를 만날 수 있다. 거함은 변치 않는 위용으로 박물관에 들어선 사람들을 압도했다. 바닥에서 돛대 꼭대기까지 높이 52.5m, 함체의 높이(선미 기준) 19.3m로 5층 건물만한 나무배가 마치 영화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선체의 길이는 47.5m, 뱃머리 대(바우스프릿)까지 포함한 총길이는 69m에 이른다. 보우스프릿에는 거친 파도를 넘어보지 못한 왕의 상징물, 사자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바다 밑 갯벌 속에 333년 동안 묻혀 있다가 1961년에 인양됐다. 목재 침몰선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기적적인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비겔란 조각 공원(The Vigeland Park)은 노르웨이의 거장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Gustav Vigeland)이 평생에 걸쳐 완성한 세계 최대의 단일 예술가 조각 공원이다. 공원내 가장 높은 곳에 솟아오른 17m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인 모놀리트 (Monolith)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발전과 진보의 기회...국가경영과 발전전략이 우리와는 상이

# 북해와 발트해를 주름잡던 바이킹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찍부터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바다의 왕자 바이킹들의 모험과 전설이 푸른 바다 위로 펼쳐진다. 비록 무자비한 침입과 약탈 등으로 해적민족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복과 탐험, 식민과 교역 등이 중세 유럽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어디에 서있는가. 무자비한 약탈로 수많은 전리품을 배에 가득 실은 채 처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이킹의 모습인가. 아니면 그들의 침략을 일거에 격퇴시킨 카를대제의 후속군단인가. 피오르를 가로지르는 낯선 바다 위 한복판에 서있는 필자에게 미지의 대륙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우리가 차분하게 연구하고 개척해야 할 땅이 아닌가 싶다.

스칸디나비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발전과 진보의 기회였다. 또 강대국과 선진국이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또 국가목표와 발전전략이 우리나라와는 상이한 것도 이색적이다. 비록 그들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은 아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인 가운데 문화적으로도 자부심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그 군사력과 외교력을 떨쳐야만 꼭 선진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경영상 압도적인 인구와 영토의 팽창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총인구는 약 2,230만 명이며, 세 국가 모두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최소 7만 달러에서 최대 10만 달러가 넘는 세계 최상위권의 국민소득을 기록하고 있다. 세 나라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대한민국 인구(약 5,100만 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인구가 적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이른바 노르딕 모델(Nordic Model)로, 높은 세금 부담을 기반으로 촘촘한 사회 안전망과 무상 교육·의료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안정감, 행복감이 중요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엄청나게 징수한다. 또 공무원들의 하찮은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담세력은 개인, 기업 및 국가 구성원 전체의 조세부담능력, 즉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담세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북유럽 수준의 복지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북유럽 교육 정책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평등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한다. 핀란드, 스웨덴 등을 중심으로 한 노르딕 교육 모델은 경쟁보다는 협력, 획일성보다는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지향하며 세계적인 교육 혁신의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

북유럽 국가들은 과거 '디지털 교육'의 선두 주자였으나, 최근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인한 학습 능력 저하, 집중력 분산, 정서 발달 저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을 법적으로 전면 금지하거나 강력히 제한하는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넘사벽'인 북유럽식의 교육모델만 보여주면 한국의 교사들을 기죽이거나 학부모들에게 현재의 교육을 한탄하게 만들 지도 모른다.

북유럽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너무 적어서 사회생활이 도드라지고,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괴로워한다는 전언이다. 일년중 6개월이나 되는겨울철에는 날씨가 춥고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어서 우중충한 날이 너무 많고, 사회 전반적인 문화가 아시아인에게 생경하고 느려서 불편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안정감, 행복감이다. 또 그 사람들이 민주적인 합의를 통해 그려내는 국가의 미래상이 돋보였다. 더 부유하고,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의지가돋보였다. 더 나은 국민들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국가경영과 발전전략은 물론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무너진 스칸디나비아제국의 터전 위에서 지구상에서 제일 가는 복지국가를 건설해낸 코펜하겐과 스톡홀름, 오슬로의 많지 않은 인파와 거리를 둘러보면서 어쩌면 이곳에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팽창하는 제국이 아니면서 적은 인구 속에서도 진보하고 발전하는 민주복지국가, 다시 말해 ‘강소국(强小國)’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상이다. <사진=정종석 발행인>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naver.com )

금융소비자뉴스 대표이사/발행인(언론학박사)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이사장

(전)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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