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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캐나다 빅토리아섬과 이민개척사에 묻힌 '이름없는 희생'
거대한 캐나다 빅토리아섬과 이민개척사에 묻힌 '이름없는 희생'
  • 민경중
  • 승인 2026.07.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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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 골목에서 록키의 철길까지...거리 곳곳 이면에 짙게 배어 있는 디아스포라의 묵직한 역사와 대면
캐나다의 평화롭고 눈부신 번영 아래엔, 이름 없이 스러져간 중국인 선조들의 희생이 주춧돌처럼 깔려있어
캐나다 밴쿠버섬(빅토리아섬)과 밴쿠버를 오가는 카페리 여객선

[민경중 기행칼럼] 제주도의 17배에 달하는 거대한 캐나다 밴쿠버섬(빅토리아섬).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너 하버를 품은 주도 빅토리아의 거리를 걷다 보면, 그 이면에 짙게 배어 있는 디아스포라의 묵직한 역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 차이나타운의 좁은 '판탄 앨리(Fan Tan Alley)'로 향합니다. 이곳 차이나타운은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북미대륙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세기 '금산(金山)'의 꿈을 안고 낯선 땅을 밟았던 중국인 이민자들. 모진 차별 속에서도 굳건한 공동체를 일궈낸 그들의 진정한 고단함은 섬을 넘어 대륙을 가로지르는 로키산맥의 험준한 산세 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 뼈아픈 희생의 흔적을 좇아,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내륙에 위치한 레벨스토크 철도박물관(Revelstoke Railway Museum)으로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캐나다 철도공사에 투입된 중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차별 구조와 열악한 거주환경을 명시한 안내문.

험난한 자연과 노선의 변경, 그 가혹한 시작

박물관에 들어서면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핵심 인프라인 캐나다 태평양 철도(CPR)의 건설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초기 철도 건설 계획은 북쪽의 옐로우헤드 패스를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881년, CPR은 노선 단축과 토지 투기 문제를 피하고자 노선을 남쪽으로 전격 변경했습니다. 현장 측량사 월터 모벌리가 측량한 '이글 패스'와 지질학자 제임스 헥터가 탐험 중 사고를 겪고 명명한 '키킹 호스(Kicking Horse)' 고개가 훗날 캘거리로 이어지는 주요 경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남부 노선의 지질학적 조건은 건설에 극도로 불리했습니다. 비가 오면 거대한 늪으로 변해버리는 '푸른 점토(Blue Clay)' 구간을 뚫기 위해 증기 굴착기가 동원되었으며, 특수 말뚝과 잘게 부순 돌로 지반을 다지는 혹독한 기초 공사가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겨울철이면 2m가 넘는 폭설과 눈사태가 노동자들을 덮쳤고, 철도 회사는 이를 막기 위해 노선 곳곳에 목조 방지막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전시실에 마련된 디오라마는 거대한 눈 벽에 갇힌 기차와 이를 파내기 위해 투입된 인부들의 처절한 제설 작업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도록 일하지만 임금은 없다(All work, No pay)". 중국인 노동자들은 가장 낮은 등급의 일반 백인 노동자가 하루 1.5달러에서 2달러를 받을 때 그 절반 수준인 단 1달러의 일당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목숨을 담보로 니트로글리세린 폭약을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절벽 구간을 도맡았다.

철길 위에 뿌려진 피와 땀, '고력(苦力)'의 비극

가혹한 자연보다 더 잔혹했던 것은 건설 현장의 차별적인 노동 구조였습니다. 19세기 중반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자, 서구 자본가들은 노예를 대체할 '값싸고 쓰다 버리기 쉬운' 하층 노동력을 아시아에서 찾았습니다. 1880년대, CPR의 가장 험준한 로키산맥 구간에 투입된 약 1만 5천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당시 백인 사회는 이들을 ‘쿨리(Coolie)’라 부르며 멸시했습니다. 이 단어의 발음은 절묘하게도 중국어 ‘고력(苦力)’, 즉 ‘쓰디쓴 육체노동’이라는 뜻과 일치했습니다. 이는 결코 그들의 헌신에 수고했다며 위로하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명칭에 담긴 뜻 그대로, 이들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인프라 건설을 위해 철저히 소모되는 육체노동의 도구로 취급받았습니다.

임금과 처우의 차별은 명확하고 가혹했습니다. "죽도록 일하지만 임금은 없다(All work, No pay)", 이들은 가장 낮은 등급의 일반 백인 노동자가 하루 1.5달러에서 2달러를 받을 때 그 절반 수준인 단 1달러의 일당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목숨을 담보로 니트로글리세린 폭약을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절벽 구간을 도맡았습니다.

CPR은 여객 감소를 막기 위해 1950년대에 일광욕 유리와 호두나무 가구로 장식된 돔형 관측 열차 '더 캐네디언'을 도입하며 타개책을 모색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양 불균형과 잦은 산재

심지어 이 적은 임금에서 텐트 사용료와 여비를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했고, 시중보다 두 배나 비싼 회사 매점의 물가 탓에 실질적인 소득은 턱없이 낮았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양 불균형과 잦은 산재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1883년 초에는 비타민 C 부족으로 24명의 중국인이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폭발과 산사태로 인한 사상자가 이어지며, 전체 공사 기간 동안 사망한 중국인 노동자는 600명에서 최대 2,000명으로 추산됩니다.

당시 화교 사회에 "철도 1마일이 건설될 때마다 중국인 노동자 1명의 목숨이 묻혔다"는 참혹한 말이 맴돌았을 정도로 그들의 희생은 캐나다 철도 건설의 절대적인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 정부의 행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식 사망 기록은 철저하게 누락되었습니다.

여객 운송 수요는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가파르게 하락했다. 1940년 빅 벤드 고속도로와 1962년 트랜스캐나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자동차 여행객이 급증했다.

파업과 통제, 그리고 안전을 위한 기술의 진화

물론 현지 백인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하루 10시간에서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24시간 교대 근무가 이어졌고, 현장 식단은 보존성이 높은 돼지고기와 콩으로만 제한되었습니다. 급기야 1884년, 자금 부족으로 임금 지급이 중단되자 노동자들은 "임금이 없으면 노동도 없다(No Pay - No Work)"며 거센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북서부 기마경찰대의 샘 스틸 대위가 무력으로 주동자들을 동부로 추방했고, 사태는 현장 감독관 제임스 로스가 사비를 포함해 가용 현금을 모아 밀린 임금을 지불한 후에야 간신히 진정되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을 딛고 철도의 하드웨어가 완성된 후, 비로소 안전 운행을 위한 소프트웨어 제도가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차로 인한 충돌 혼선을 막기 위해 1883년 북미 철도망에 24시간 표준시가 적용되었습니다.

1891년 오하이오주에서는 기관사의 시계가 단 4분 멈춘 것이 원인이 되어 끔찍한 열차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1893년 엄격한 시계 표준 규정이 제정되었습니다. 기관사들은 온도 변화에 강하고 마찰을 줄인 17석 이상의 부품을 사용하며, 주당 오차가 30초 이내인 회중시계를 의무적으로 소지해야만 했습니다.

캐나다 철도건설 중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2003년 건립된 아치 형태의 노동자 기념비.

시대의 변화와 철도의 쇠퇴

1950년대를 기점으로 철도 산업은 동력원의 세대교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950년 캐나다 열차의 91%는 증기기관차였으나, 급수탑이 필요 없고 연료 소비가 적은 디젤 기관차가 빠르게 도입되면서 불과 10년 뒤인 1960년에는 증기기관차의 비중이 1.4%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여객 운송 수요는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1940년 빅 벤드 고속도로와 1962년 트랜스캐나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자동차 여행객이 급증했습니다.

CPR은 여객 감소를 막기 위해 1950년대에 일광욕 유리와 호두나무 가구로 장식된 돔형 관측 열차 '더 캐네디언'을 도입하며 타개책을 모색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1978년 국영 기업인 VIA Rail이 여객 서비스를 이관받았고, 결국 1990년 1월 레벨스토크 역을 경유하는 마지막 여객 열차 운행이 종료되었습니다.

1978년 국영기업인 'VIA레일'이 여객서비스를 이관받았고, 결국 1990년 1월 레벨스토크 역을 경유하는 마지막 여객열차 운행이 종료됐다. 시민들이 열차종료 장례식을 거행하는 모습.

잊혀진 희생과 낙엽귀근(落葉歸根), 그리고 사유의 길

박물관 외부로 나오면 2003년 노동절에 자연석을 쌓아 건립된 '노동자 기념비'가 묵묵히 서 있습니다. 아치에 새겨진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과 집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을 상기시켜 줍니다"라는 비문은, 거대한 인프라 구축의 이면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기록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885년 철도가 완공되어 캐나다가 물리적인 하나의 국가로 연결되자마자, 정부는 이들에게 '인두세(Head Tax)'를 부과하며 철저한 배척을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1923년 7월 1일에는 중국인 이민을 전면 금지하는 '배척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캐나다 전역이 건국 기념일(Canada Day)로 축제를 벌이는 동안, 화교들은 이날을 '칠일국치(七一國恥)'라 부르며 상점의 문을 닫아걸고 침묵으로 항거했습니다.

타국에서 억울하게 숨을 거둔 이들은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염원대로 고향 땅에 묻히길 바랐습니다. 사진 속 1885년에 세워진 빅토리아 중화회관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무연고 노동자들의 유골을 수습해 먼 광둥성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숭고한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빅토리아 항구의 멋진 노을

아름다운 자연 풍경 너머의 거대한 진실을 읽어내야

이러한 모진 배척과 구조적 차별은 다음 세대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1907년, 빅토리아 교육청은 대부분의 중국계 어린이들이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인종차별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서 화교 커뮤니티는 자녀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금을 모아 1909년에 이 학교를 직접 설립하며 끝끝내 이 땅에 흔들림 없는 뿌리를 내렸습니다.

오늘날 캐나다의 평화롭고 눈부신 번영 아래에는, 일부지만 이름 없이 스러져간 중국인 선조들의 희생이 주춧돌처럼 깔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너머의 거대한 진실을 읽어내며 걷는 길, 여행은 언제나 우리에게 묵직한 사유와 통찰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납니다.

밴쿠버 스탠리공원의 필자 민경중 교수

밴쿠버의 스탠리공원과 잉글리쉬 비치 그리고 행복

밴쿠버인들은 스탠리공원과 잉글리쉬 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메모리얼 벤치에 어느 퇴역소령을 기억하는 문구는 고교시절 처음 접하고 그 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싯구가 적혀있네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명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마지막 구절.

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이 내 삶에 큰 의미와 변화를 가져왔음을 고백해 봅니다. 

[밴쿠버에서=사진, 민경중교수 제공]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민경중 (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전 대표이사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2008~2010  CBS 보도국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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