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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1) 금융의 본질, 돈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생산적 금융](1) 금융의 본질, 돈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 나병문
  • 승인 2026.08.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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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본질은 돈을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일...생산적 금융 화두로 떠올라
안정성 위주의 오랜 관행 탈피해야...금융의 평가 기준 달라지고 은행 역할 바뀌어야

 

[나병문 칼럼] 금융의 본질은 돈을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일이다. 개인의 여유 자금을 모아 기업에 공급하고, 현재의 자금을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연결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 현실은 그 본질과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돈이 필요한 곳보다 안전한 곳을 향한다. 회수 가능성이 높은 곳, 담보가 확실한 곳, 손실 위험이 낮은 쪽으로 흐르는 돈의 속성을 충실히 따라왔다.

금융기관들은 오랫동안 그 길을 걸어왔다. 은행은 부동산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거두었고, 기업금융도 담보와 보증에 많이 의존했다. 채권의 부실 방지를 위한 자구책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다른 기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 영리 추구를 넘어 국가적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돈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저성장, 고령화, 산업 경쟁력 약화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고군분투 중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이차전지, 로봇, 방산, 우주항공 같은 미래 산업은 하나같이 대규모의 자금이 소요된다. 수익이 나기까지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산업들이다. 이런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이전처럼 담보를 요구할 것인가? 기존 금융 문법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들어 생산적 금융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돈을 더 많이 푸는 정책이 아니라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과 담보 중심의 금융에서 산업과 기술, 혁신과 성장으로 자금의 흐름을 돌리는 일이다. 금융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금융은 과거의 관행에서 탈피해서 미래를 보고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안정성 중심 금융의 한계

최근 들어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부동산 등을 담보로 잡고 대출하는 안정성 위주의 여신 운용이 한국 금융의 오랜 관행이었다. 확실한 담보를 취득하면 회수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도 금융회사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은 표준화된 상품이고, 담보가치 평가도 비교적 용이하다. 금융회사로서는 손쉽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부동산에 돈이 지나치게 몰리면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금이 토지와 주택 가격을 떠받치는 데 머물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으로 충분히 흘러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일시적으로 자산 효과를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과 산업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집값이 상승한다고 경제의 체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금융도 마찬가지다. 담보가 있는 기업은 돈을 빌리기 쉽고, 담보가 부족한 기업은 기술과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창업기업과 혁신기업은 눈에 보이는 자산보다 사람, 기술, 아이디어 같은 성장 가능성이 주된 자산이다. 그런데 금융회사가 담보와 과거 실적만 보고 판단하면 이런 기업은 금융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금융회사에 모든 위험을 떠안으라고 할 수는 없다. 손실이 나면 결국 예금자와 주주, 금융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 회피가 금융의 본질적 역할은 아니다. 이제 금융기관은 위험을 평가하고, 분산하고, 감당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를 읽고 위험을 관리하는 생산적 금융을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

돈의 흐름을 바꾸는 일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금융의 평가 기준부터 달라져야 한다. 담보 위주의 금융에서 사업성, 기술력, 시장성, 경영 역량을 중시하는 금융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평가와 산업 이해, 장기 투자 경험, 사후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금융회사가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 기업을 평가할 수 없다. 숫자만 보는 금융으로는 첨단 기술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은행은 여전히 한국 금융의 중심이며 막대한 예금 기반과 기업네트워크, 신용평가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 과거처럼 안전한 담보대출에만 머물러서는 생산적 금융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제표만이 아니라 미래 현금흐름과 산업 경쟁력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정성은 지키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역량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자본시장과 정책금융의 역할도 중요하다.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에는 장기 자금과 모험자본이 필요하다. 은행 대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식, 채권, 펀드, 정책금융, 민간투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이때 지원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금이 실제로 필요한 산업과 기업에 제대로 공급되느냐이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장사가 아니라 사회의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적 금융은 한국 금융의 체질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의 흐름을 실제로 바꾸기 위한 장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음 글에서는 생산적 금융의 대표적 실험이라 할 수 있는 국민성장펀드가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스토아 아카이브 대표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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