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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개혁입법 과제](32) 비정한 세상...‘구하라법’ 조속히 통과시켜라
[새 정부 개혁입법 과제](32) 비정한 세상...‘구하라법’ 조속히 통과시켜라
  • 나병문
  • 승인 2023.01.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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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게 자녀의 유산이 돌아가는 불합리한 실태는 반드시 개선해야

지난 해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공정과 상식의 사회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국정에 임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뉴스는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이사장 정종석)과 공동으로 새 정부의 개혁입법 과제를 부문 별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물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공동주최 : 금융소비자뉴스,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후원 : 금융소비자연맹,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소비자연구원, 서울자본시장연구원

[나병문 칼럼] 며칠 전에, 자신의 신생아를 숲속에 유기한 20대 친모가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에 핏덩이를 내다 버린 엄마의 비정한 행위는 세상을 분노케 했다.

이 엽기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이 부모의 책임과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재작년이던가, 조업 중이던 어선 한 척이 침몰했다. 구조인력이 동원되어 인근을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배에 타고 있던 어부 A씨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관계 당국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고, 소속 선박회사는 그 앞으로 행방불명 급여, 장례비, 유족급여 등의 명목으로 2억여 원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A씨의 친모가 가출한 지 무려 54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가 찾아온 목적은 아들의 사망 보상금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어린 자식을 무정하게 버리고 떠난 뒤, 반세기 넘도록 한 번도 굽어본 적이 없던 인간이 아들의 목숨값을 탐내어 찾아들었다니! 듣고서도 믿기지 않는 참담한 이야기였다.

법(法) 취지에 어긋난 황당한 사례

그녀는 아이를 낳아서 2~3년 동안 키웠으니 당연히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A씨가 미혼인 만큼 친모인 자신이 보상 수령의 1순위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의 뻔뻔함에 망자의 누나를 비롯한 가까운 친척들도 치를 떨었다고 한다. 아무 관련이 없는 남들의 입에서도 욕이 나올 지경인데,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쨌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법원의 결정이었다. 소송을 담당한 판사는 A씨의 친모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현행 선원법 시행령이 ‘선원의 사망 당시 그에 의해 부양되고 있지 아니한 배우자, 자녀, 부모 등도 유족에 해당한다’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 법의 조항에 따라서 친모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었지만, A씨의 동거녀(실질적인 아내)는 한 푼의 보상금도 받을 수 없었다. 자식을 팽개치고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다가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는 부모의 몰염치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니!

비도덕적인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탐하는 것도 막지 못한다면 어찌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른바 ‘구하라법’이 지금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구하라법’ 통과를 미적대는 이유는?

2019년 가수 구하라 씨 사망 후, 집 나간 지 1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했다. 구 씨의 오빠가 부당함을 호소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구 씨의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구 씨의 오빠는 ‘어린 자녀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상속 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라며 입법을 청원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는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하라법’이다.

그렇다면 그 법이 지금껏 통과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는 상속권과 관련해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라며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규정하게 되면 상속결격 여부를 판단하기가 곤란하고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돼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고법원의 해석에 관해서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적 미비(未備)는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한두 가지 사례만을 염두에 두고 법률을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건들에 예기치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게 자녀의 유산이 돌아가는 불합리한 실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아를 무책임하게 유기한 엄마의 몰인정한 행위를 지켜보며, 언제까지 그같이 부정의한 일들이 반복되는 현실을 지켜봐야 할지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부정의(不正義)한 법 현실 바로잡아야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어디라 할 것 없이 갈등이 존재한다. 다양한 생각과 행동 방식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사회규범이다. 그중에서도 강제력이 있는 것은 법률뿐이다.

법이 없다면 사회는 온통 혼란의 도가니일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률을 제대로 만들라고 국민이 뽑아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고 그들이 모여있는 곳이 국회다.

알다시피 ‘구하라법’은 수년 전에 국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 본분이 무엇인가? 정의에 반하는 현상이 횡행할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법을 만드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다. 사람 사이의 갈등 조정을 도덕심에만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국회는 무책임한 부모의 터무니없는 욕심을 막아낼 ‘구하라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도덕성에 관하여 과도하게 법률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분명히 잘못된 현상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맞고 정의에 부합하는 법률이 필요하다. 당리당략에 쏟아붓는 노력의 반의반만 투자해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한 법률을 지금껏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올겨울은 유달리 춥다. 급등한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 든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깊다.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게 지도층의 몫이다. 정치권에 몸담은 이들은 밤낮으로 밥그릇 싸움에만 매달리지 말고 진정으로 민생을 위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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