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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 막히면 AI도, 메모리도 멈춘다
‘금융’이 막히면 AI도, 메모리도 멈춘다
  • 정기석
  • 승인 2026.10.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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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슈퍼 사이클의 메모리 수요, 산업 사이클 보다 ‘금융 사이클’을 먼저 읽어야

금융시장이 먼저, 계약이 그다음, GPU·데이터센터 투자와 메모리 주문이 마지막

[정기석 칼럼] AI에 돈이 끊기는 순간, 메모리도 멈춘다. AI 산업을 둘러싼 낙관론을 경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질문이 있다. “AI가 계속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 성장을 끝까지 누가 돈으로 떠받칠 것인가”다.

지금까지 AI시장에서는 첫 번째 질문에 지나치게 경도됐다. AI 에이전트가 확산되고, 자율주행과 로봇으로 AI의 영역이 넓어지며, 더 많은 연산능력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득세했다. AI산업의 미래는 그 결과 데이터센터가 지어지고 GPU가 들어가며 HBM 수요가 늘어나는 단순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산업의 역사는 수요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요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공장은 지어지지 않는다. 주문이 있어도 금융이 막히면 설비투자는 늦어진다. AI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AI 투자는 과거의 IT 투자보다 금융시장에 훨씬 민감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AI의 다음 단계는 ‘기술 경쟁’인 동시에 ‘자금조달 경쟁’

최근 한국신용평가의 ‘AI 슈퍼 사이클에서의 메모리 수요: 산업 사이클에 금융 사이클이 더해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인프라 사업자들은 이제 자체 현금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자를 벌이고 있다. 6개 주요 AI 인프라 사업자의 합산 FCF가 2026년 2분기 적자로 돌아섰고, 같은 해 상반기 차입금 순증가액은 설비투자의 절반 수준까지 올라왔다. 2025~2028년 AI CAPEX 약 2조9000억달러 가운데 절반가량인 1조5000억달러가 외부자금으로 조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AI의 다음 단계는 ‘기술 경쟁’인 동시에 ‘자금조달 경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돈을 빌리는 방식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으면 됐다. 투자자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됐다. 빚이 얼마인지,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이자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됐다.

지금은 다르다. 데이터센터의 임대료를 떼어 ABS를 만들고, GPU와 장기 컴퓨트 계약을 묶어 만들고, 데이터센터를 JV에 넣은 뒤 장기 임대계약을 붙인다. 기업의 재무제표에 보이던 위험이 SPV(특수목적기구)와 JV(합작투자), 사모신용시장 등으로 흩어진다. 가히 금융공학의 진화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 다음 데이터센터 착공이 늦어질 수도

그러나 다른 이름으로는 ‘위험의 이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좋아졌다고 해서 위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CoreWeave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업자 자체의 신용도보다 높은 등급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량 고객과의 장기 계약, GPU, 그리고 그 계약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금융구조 안에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위험을 없앤 것이 아니다. CoreWeave의 신용위험이 고객의 신용위험과 계약 지속 가능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데이터센터 ABS(자산유동화증권)도 마찬가지다. 장기 임대계약이 있으니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임차인이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약 하나가 흔들릴 때 전체 현금흐름이 흔들릴 수 있다. 금리가 오르고 ABS 시장의 투자심리가 나빠지면 차환 조건도 악화된다. 데이터센터 자체가 멀쩡해도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 다음 데이터센터 착공이 늦어질 수 있다.

실물투자의 병목, 반도체 공급능력에서 자금조달 능력으로 이동

이것이 지금 AI 산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다. 실물투자의 병목이 반도체 공급능력에서 자금조달 능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다. 물론 당장 AI 투자가 멈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까지의 흐름은 반대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AI의 성장 가능성에 상당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공모채권시장의 비중이 줄어들더라도 사모신용, 인프라펀드, 프로젝트금융, ABS 등 다른 통로가 생겨나고 있다. 금융시장은 한쪽 문이 좁아지면 다른 문을 찾는다.

여기서 메모리 업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AI슈퍼사이클이 돌아가는 메모리산업에서는 금융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계약이 그다음 움직이고, GPU·데이터센터 투자와 메모리 주문에 이르는 실물 발주가 마지막에 움직인다.

이제 AI 슈퍼사이클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이 순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메모리 업황을 한 박자 늦게 보게 된다. 사모신용 신규 약정 감소나 구조화금융 발행 둔화, 스프레드 확대는 실제 메모리 주문이 줄어들기 전에 나타날 수 있는 선행 신호다.

그래서 이제 메모리 업계가 봐야 할 것은 단순한 ‘수요’가 아니다. 수요를 지불할 수 있는 돈이 남아 있는가다. 이제 AI 슈퍼사이클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AI를 기술 사이클로 봤다. 엔비디아의 GPU가 얼마나 팔리는지, HBM 수요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데이터센터 CAPEX가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봤다. 이제는 여기에 금융 사이클을 겹쳐야 한다.

어쩌면 다음 메모리 사이클의 변곡점은 반도체 공장에서 먼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월가의 신용시장이나 사모펀드의 투자심리, 데이터센터 ABS 발행시장, AI 인프라 기업의 자금조달 조건에서 먼저 보일 수 있다.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역설이다. AI에 대한 수요가 살아 있어도 투자는 멈출 수 있다. 결국 반도체 업황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을 현실로 바꾸는 돈의 흐름 ‘금융’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前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비전임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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