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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깨비 ‘견해’를 ‘나’로 착각하는 양극화 정치의 비극
헛깨비 ‘견해’를 ‘나’로 착각하는 양극화 정치의 비극
  • 윤영호
  • 승인 2026.09.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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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양극화...여야 정치인과 그들을 둘러싼 강성 지지층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
유권자도 달라져야...눈을 부라리고 억지 고성에 상대를 모욕하는 정치인을 ‘사이다’라고 인정해주지 말아야

[윤영호 칼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 오히려 다른 경고가 필요해 보인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내 생각’ ‘내 견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얼마나 단단한 것인가. 오늘 옳다고 믿는 것이 내일은 틀렸다고 판명되기도 한다. 젊은 날의 신념을 중년에는 부끄러워하고, 어제 분노했던 일에 오늘은 웃기도 한다. 생각은 강물처럼 흐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흐르는 물을 퍼 담아놓고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인 양 착각한다.

몸도 그러하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한다. 세포는 생겨나고 사라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몸과 마음의 상태도 달라진다. 생각과 감정은 더욱 그렇다. 어떤 사건을 만나면 분노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믿음이 바뀌기도 한다. 생각과 견해란 특정한 경험과 기억, 환경과 감정이 만나 잠시 만들어내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한번 생겨난 생각은 사라지지만, 그것이 남긴 흔적은 기억의 창고에 쌓인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은 이어지는 다음 번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의 필터가 된다. 자신에게 불쾌했던 경험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과거에 성공했던 판단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반복된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방식으로 보는 존재에 가깝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일시적이었던 견해가 굳어진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던 생각이 어느 순간 ‘틀림없다’가 되고, 마침내 ‘그것이 나의 신념이다’라는 정체성으로 변한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문제는 생각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다

‘내 견해가 곧 나’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견해에 대한 비판은 나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진다. 상대가 “그 생각은 틀릴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나는 “당신은 나를 부정한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면 토론은 끝난다. 진실을 찾기 위한 대화는 자기방어의 전쟁으로 바뀐다. 논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은 소속감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보여주는 풍경이 꼭 그렇다. 여야 정치인과 그들을 둘러싼 강성 지지층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정한 정치적 사건, 선거의 승패, 과거 정부에 대한 평가, 언론 보도와 온라인 정보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각양의 ‘진실’이 만들어졌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는 이유다.

한쪽에서는 영웅인 사람이 다른 쪽에서는 악인이 된다. 한쪽에서는 개혁이 다른 쪽에서는 파괴가 된다. 상대의 제안은 내용을 검토하기도 전에 “저쪽의 공작”으로 의심받는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토양 가운데 하나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경고했다.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가 더 강력해지는 순간, 정치는 위험해 진다. 오늘날에는 알고리즘이 그 위험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견해만 반복해서 접하고, 반대 의견은 점점 낯설고 불쾌한 것으로 느낀다.

확증편향은 개인의 심리 현상이지만, 정치권에서는 거대한 팬덤이 되었다. 정치인은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지지층은 자신들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 주는 정치인에게 환호한다. 더 큰 목소리, 더 강한 표현, 더 자극적인 적대감이 ‘정치력’으로 포장된다.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능력이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고함이 통찰보다 커진 사회에서 정치발전을 이룩한 선례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는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헛깨비 견해’ 포장기술에 능해

민주주의의 장점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그러길래 정치는 원래 의견의 일치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의견의 불일치를 관리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는 견해의 차이를 존재의 적대 관계로 바꾸고 있다. ‘당신은 틀렸다’가 아니라 ‘당신은 제거되어야 한다’로 넘어가는 순간 민주주의는 공존의 제도를 잃고 정치세력간 전쟁터로 변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돈과 권력, 공천과 이권이라는 현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정말 자신의 견해를 절대 진리라고 믿어서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지 않다.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한 걸음 물러서면 지지층이 떠나고, 당내 입지가 흔들리고, 공천과 권력이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보다 진영이, 국익보다 당략이 앞서는 이유다.

그래서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헛깨비 견해’를 포장하는 기술에 능하다. 편견을 신념이라 부르고, 증오를 정의라 부르고, 당파적 이익을 대의명분의 옷으로 감싼다. 유권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능력이 정치적 리더십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동은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지는 못한다.

철학자 칼 포퍼는 인간의 지식이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토론이 가능하고,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보다 “내가 틀릴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은 자신의 견해를 ‘나’와 분리할 줄 알아야

이것은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라는 말이 아니다. 신념은 필요하다. 원칙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념이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신념은 등불이 아니라 감옥이 된다.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최소한의 겸손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견해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빚어낸 하나의 해석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에도 옳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반대편의 승리가 곧 국가의 패배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자신의 견해를 ‘나’와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견해를 바꾸었다고 인간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했다고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성숙의 증거다.

이제 유권자도 달라져야 한다. 눈을 부라리고 억지 고성을 지르며 상대를 모욕하는 정치인을 ‘사이다’라고 인정해주지 말아야 한다. 막말을 용기로, 오기를 소신으로, 편 가르기를 리더십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 수준은 정치인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박수방향과 강도가 결국 정치의 기준이 된다.

견해는 나일 수 없다. 생각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구름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름을 붙잡고 ‘이것이 하늘 전체’라고 우긴다. 그 순간 견해는 헛깨비가 되고, 우리는 그 헛깨비의 노예가 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갇혀 있는 감옥도 어쩌면 스스로 만든 이 ‘견해의 감옥’일지 모른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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