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권이 ‘포용금융’을 말한 지 오래다. ESG 경영도 단골 구호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상생하겠다는 약속이 금융사의 보고서와 광고를 장식한다. 그러나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최근 3년간 주요 금융사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낸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946억 원에 이른다. 사람을 채용하는 대신 돈을 내는 방식으로 법적 의무를 갈음한 것이다. 포용을 말하면서 고용은 외면하는 금융권의 민낯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서일준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은행 1.66%, 증권 2.85%, 보험 2.26%에 그쳤다. 법정 의무고용률 3.10%를 모두 밑돈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의 고용률은 1.34~1.76%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가 낮다는 데 있지 않다. 장애인을 직접 채용해 함께 일할 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편하다는 인식이 금융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부담금은 은행 641억 원, 보험 219억 원, 증권 86억 원이다. 금융사 입장에서 수십억 원의 부담금은 거대한 손익계산서에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까지 비용 처리할 수는 없다.
ESG의 간판과 고용의 현실은 왜 다른가
ESG의 ‘S’는 사회적 책임을 뜻한다. 다양성과 포용도 그 안에 포함된다. 그런데 장애인 고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돈으로 대신한다면 ESG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더 답답한 것은 공공 부문과 감독 당국의 모습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3.80%로 더 높은 공공기관에서도 미달 사례가 나타난다. 한국산업은행의 장애인 고용률은 2.43%에 그쳤고, 서민금융진흥원과 IBK기업은행도 기준을 밑돌았다.
금융시장의 파수꾼인 금융감독원도 다르지 않다. 최근 3년 평균 장애인 고용률이 1.70%다. 민간 은행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과 감독 당국이 3년간 약 57억 원의 부담금을 내면서도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금융사에만 책임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감독하는 곳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담금이 ‘고용 회피의 가격표’로 변화
장애인 고용부담금의 본래 취지는 기업이 의무를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그런데 부담금을 내는 것이 직접 고용보다 싸고 편하다면 제도는 거꾸로 작동한다. 부담금이 ‘책임 이행의 수단’이 아니라 ‘고용 회피의 가격표’가 되는 순간이다.
금융은 일반 산업과 다르다. 국민의 예금과 투자금을 다루고 국가의 인가와 감독 아래 움직인다. 경제의 혈맥이라는 공공적 성격도 강하다. 그렇다면 사회적 책임 역시 다른 산업보다 엄격해야 한다.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반복적으로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금융사에는 부담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담금을 내는 편이 직접 고용보다 유리한 구조부터 깨야 한다.
경영평가와 성과관리에도 장애인 고용을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형식적인 채용 숫자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과 직무의 질까지 살펴야 한다.
벌금이 아니라 일자리로 책임을 증명해야
채용의 문도 넓혀야 한다.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금융 직무는 단순 보조업무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 금융, 데이터 분석, 고객 상담, 리스크 관리 등 전문성을 발휘할 영역은 넓다. 필요한 것은 시혜가 아니라 기회다.
946억 원은 단순한 부담금 총액이 아니다. 금융권이 지난 3년간 사람을 채용하는 대신 돈으로 책임을 대신한 가격이다.
포용은 광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채용공고에서 시작된다. 상생은 보고서에 쓰는 문장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 증명된다.
금융권이 진정으로 ESG를 말하려면 지갑을 열어 부담금을 낼 것이 아니라 채용의 문을 열어야 한다. 돈으로 때우는 포용은 포용이 아니다. 사람을 배제한 채 책임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