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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 (3) 부동산 금융을 넘어 산업 금융으로
[생산적 금융] (3) 부동산 금융을 넘어 산업 금융으로
  • 나병문
  • 승인 2026.10.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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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칼럼] 지난 글에서는 국민성장펀드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았다. 국민성장펀드는 생산적 금융을 구체화하기 위한 중요한 실험이지만, 그런 펀드 하나로 한국 금융의 체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돈의 흐름을 바꾸려면 정책금융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은행, 자본시장, 정책금융, 감독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국 금융은 그동안 안정성을 중시하며 성장해왔다. 예금자의 돈을 지키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하며,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확보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담보대출과 안정적인 여신 운용이 금융회사의 중요한 수익 기반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잘못된 관행이라고 폄훼할 수만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 환경이 달라졌다. 저성장과 고령화, 산업 경쟁력 약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래 산업의 육성에는 대규모 자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이차전지, 로봇, 방산, 우주항공 같은 분야는 기존 담보 중심 금융만으로는 충분히 뒷받침하기 어렵다.

부동산 금융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여전히 필요한 금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금이 그쪽으로 지나치게 쏠릴 때 생긴다. 돈이 고정 자산을 떠받치는 데만 머물면 경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한국 금융은 안정성을 지키면서도 산업과 기술,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야 한다.

산업 금융의 조건

산업 금융은 담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술의 가능성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하며, 시장의 변화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적과 재무제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미래 기업을 평가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매출은 빈약하나 기술력이 있는 기업, 담보는 부족해도 시장성이 있는 기업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금융회사의 여신 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 실적과 담보가치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성, 기술력, 현금흐름, 경영 역량, 산업 생태계와의 연결성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고서를 읽는 일이 아니다. 산업의 흐름을 이해하고, 실패 가능성까지 함께 따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은행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은행은 한국 금융의 중심이고, 기업과 가장 가까운 금융기관이다. 막대한 예금 기반과 신용평가 경험,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산업 금융에서도 은행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금융지원에 따른 모든 위험을 은행이 떠안을 수는 없다. 은행은 스스로의 안정성을 지키되,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본시장의 역할도 커져야 한다.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에는 은행 대출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자금 수요가 많다. 주식, 채권, 펀드, 벤처투자, 정책금융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자금의 성격도 다르다. 초기에는 모험자본이 필요하고, 성장 단계에서는 장기 자금이 필요하며, 성숙 단계에서는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산업 금융은 이런 흐름을 이어주는 체계여야 한다.

생산적 금융의 체질 전환

생산적 금융이 정착하려면 감독과 평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금융회사에 산업 금융을 확대하라고 하면서, 실패에 대해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금융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부실을 방치해서는 안 되지만,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 판단에 따른 손실까지 문책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실패를 구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사업성을 벗어난 무리한 지원과 부실한 심사에 대해서는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와 적절한 위험 관리 아래 이루어진 투자가 시장 상황 때문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생산적 금융은 위험 회피만을 우선하는 금융이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고, 분산하고, 관리하는 금융이다.

정책금융과 민간 금융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정책금융은 초기 위험을 완충하고, 민간 금융은 투자 판단과 사후관리의 전문성을 더해야 한다. 공공 부문이 모든 것을 대신해서도 안 되고, 민간 부문이 공공의 지원에만 기대서도 안 된다. 산업 금융은 정책과 시장이 서로의 역할을 지킬 때 지속될 수 있다.

생산적 금융은 결국 한국 금융의 체질 전환이다. 1회에서 살펴본 것처럼 금융의 본질은 돈을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일이고, 2회에서 본 국민성장펀드는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한 중요한 실험이다. 지금 확인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부동산 금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금융의 비중과 역량을 키워 한국 금융의 자금 배분 기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다.

돈이 안전한 곳으로 흐르는 것은 금융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그러나 그것을 방치하면 금융은 과거를 지키는 데 머문다. 반면 돈이 산업과 기술,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흘러가면 금융은 미래를 여는 힘이 된다. 그러려면 산업과 기술, 사람과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의 핵심은 더 많은 돈이 아니다. 돈이 흘러가는 방향이며, 그 방향을 책임 있게 설계하는 금융의 전문성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스토아 아카이브 대표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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