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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 전통 대문에 숨겨진 건축의 비밀
중국 베이징(北京) 전통 대문에 숨겨진 건축의 비밀
  • 민경중
  • 승인 2026.10.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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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자화상 문당호대(門當戶對)와 스차하이 골목(胡同)...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통 가옥 ‘사합원(四合院)’

중국의 전통 가옥은 붉은 대문과 화려한 문잠, 큼직한 문당을 통해 권력과 부를 외형적으로 웅장하고 직관적으로 과시

[민경중 칼럼] 베이징은 여전히 복잡하다. 중국 내 다른 도시들과 달리 묘한 긴장감은 여전하다. 자금성 들어갈 때까지 4번 정도 검문을 받는다.

그래도 뒷골목(老胡同)은 정겹다. 베이징의 얽히고설킨 오래된 골목, 후통(胡同)을 걷다 보면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통 가옥 ‘사합원(四合院)’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베이징의 역사와 낭만이 가장 깊이 서린 스차하이(什刹海) 일대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곽말약 고거(기념관)’의 대문 앞에 서면, 건축이라는 외피를 통해 당대의 권력과 신분을 시각화하려 했던 옛 고관대작들의 흥미로운 풍모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대문 상단에 가로로 꽂힌 네 개의 나무 구조물인 ‘문잠(门簪, ménzān)’은 대표적인 예다. 원래는 대문짝을 고정하는 문지방과 연결하는 띠의 끝을 못으로 고정한 것에서 유래했으나, 점차 앞면에 드러난 못머리가 장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보통 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의 짧은 기둥 형태로 앞면에 福(복)·寿(수)·喜(희) 등의 길복 글자나 무늬를 새겼으며, 개수(2개, 4개 등)가 많을수록 더 높은 품계를 나타냈다.

이와 짝을 이루듯 대문 아래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돌 구조물인 ‘문당(门当, méndāng)’(또는 포고석)은 대문이 열리고 닫힐 때 문지방이 밀리지 않도록 받치는 실용적 구조물에서 출발했다.

베이징의 역사와 낭만이 가장 깊이 서린 스차하이(什刹海) 일대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곽말약 고거(기념관)’의 대문. 

스차하이(什刹海)는 베이징의 수운(水運) 중심지이자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특히 전쟁을 상징하는 둥근 북 모양의 포고석은 무관의 집에, 문방구를 상징하는 네모난 상자·책 모양은 문관의 집에 사용되면서 신분을 가르는 표식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혼인 등을 논할 때 양가 집안의 조건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쓰는 고사성어 ‘문당호대(門當戶對)’가 바로 이 대문 위의 문잠(호대)과 문 앞의 문당에서 유래했다. 고대 관리의 품계에 따라 이 둘의 형태와 개수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두 조건이 서로 어울리는 집끼리 혼사를 맺는다는 의미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중국 고관대작들의 가옥 건축은 우리의 전통 가옥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조선시대 양반 가문이 유교적 중용의 미덕과 신분 질서를 바탕으로 솟을대문 등을 통해 절제된 격식을 중시했던 반면, 중국의 전통 가옥은 붉은 대문과 화려한 문잠, 큼직한 문당을 통해 권력과 부를 외형적으로 웅장하고 직관적으로 과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벽돌 건축과 가옥 구조를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연암은 중국의 집들이 "벽을 의지해 위는 가볍고 아래는 튼튼하며, 기둥은 벽 속에 들어 있어서 비바람을 겪지 않고, 불이 번질 염려도 없고 도둑이 뚫을 위험도 없다"며, 문 하나만 닫으면 집안의 모든 물건을 궤 속에 간직한 듯 안전하고 견고한 실용성을 갖추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조선의 목조 중심 건축관과 대조를 이루는 중국 실용 건축의 면모를 예리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더욱이 스차하이(什刹海)는 원·명·청 시대부터 수도 베이징의 수운(水運) 중심지이자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전해(前海), 후해(後海), 시하이(西海)의 호수를 품은 이 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따라 왕푸(王府,왕족의 저택)와 유서 깊은 사합원이 밀집해 있었고, 오늘날에도 베이징의 옛 정취와 활기찬 로컬 문화를 동시에 품은 가장 매력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오늘날 혼인 등을 논할 때 양가 집안의 조건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쓰는 고사성어 ‘문당호대(門當戶對)’가 바로 이 대문 위의 문잠(호대)과 문 앞의 문당에서 유래했다.

건축물은 그 시대의 치열한 삶과 사상이 응축된 거대한 역사 교과서

이처럼 유구한 역사의 숨결이 서린 스차하이(什刹海)의 후통 속에 위치한 이 사합원은 원래 1920년대에 지어져 명의의 저택으로 시작했으며, 시기에 따라 몽골 대사관, 송경령의 거주지 등으로 변모하며 격동의 근현대사를 통과해 왔다. 이후 1963년부터 곽말약이 이곳에 정착해 만년을 보냈다.

1892년에 태어나 1978년에 서거한 곽말약은 시인, 극작가, 역사학자, 고고학자이자 정치가로서 20세기 중국 문화예술계와 학술계에 거대한 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그가 1921년 발표한 시집 <여신(女神)>은 중국 현대시사에서 낭만주의적 자유시의 지평을 열며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의 해방과 혁명적 열정을 노래해 시대적 각성을 이끌었다. 막시즘적 사관을 바탕으로 고대 사회를 연구하고 역사극을 집필하며 문학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삼았던 그의 발자취는 근현대 중국 사상계 그 자체였다.

베이징 스차하이(什刹海)의 물결과 후통이 품은 옛 문관과 무관의 신분 장식부터, 연암이 바라본 중국 건축의 실용적 통찰, 그리고 시대를 울렸던 문필가 곽말약의 흔적까지.

건축물 하나는 단순히 지나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시대의 치열한 삶과 사상이 응축된 거대한 역사 교과서임을 이 오래된 골목길은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다.

 베이징의 얽히고 설킨 오래된 골목, 후통(胡同)에서의 필자(오른쪽 아래 선글라스 쓴 사람)

<베이징에서, 사진=민경중 교수 제공>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민경중 (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전 대표이사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2008~2010  CBS 보도국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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