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경영학 박사·경제·금융 칼럼니스트)/이왕로(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자원 무기화 시대의 그림자: 특정국 의존도가 낳은 구조적 아킬레스건
[권의종-이왕로 박사] 대한민국 제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공 기술과 양산 능력을 자랑하지만, 그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국가 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첨단 산업의 쌀이자 뼈대로 불리는 핵심 원자재 및 희소광물의 수급 구조가 특정 국가에 극단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크립톤·제논 등의 희소가스는 물론, 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원료인 흑연, 리튬, 망간, 그리고 영구자석에 들어가는 희토류에 이르기까지 주요 광물의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는 상시적으로 80~90%를 가볍게 상회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평온하고 자유무역이 보장되던 시기에는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특정 국가로부터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받는 방식이 기업의 이윤 추구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자원이 국가 안보를 위한 '무기'로 둔갑하는 자원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단일화된 공급망 구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했다. 원자재 공급국이 정치적·외교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출 통제나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경우, 국내 제조업 전체가 순식간에 가동 중단 위기에 내몰릴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실제로 과거 요소수 대란이나 반도체용 희소가스 파동 당시 경험했듯이, 사소한 지정학적 마찰이나 물류 차질만으로도 국내 핵심 공장이 스톱(Stop) 직전까지 가는 위기가 반복되었다. 첨단 제조업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초 원자재의 90%를 특정 국가의 손아귀에 쥐어준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비참한 현실 위에 서 있다.
공급망 차단 시나리오와 실물 경제의 마비: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는 도미노 쇼크
특정 국가에 편중된 원자재 공급망의 취약성은 만약의 사태가 현실화되었을 때 대한민국 실물 경제를 순식간에 암흑으로 몰아넣을 파괴력을 지닌다.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의 5대 주력 제조업은 촘촘하게 엮인 글로벌 밸류체인 위에서 작동하므로, 단 하나의 핵심 원료나 소재 공급이 끊기거나 가격이 폭등해도 전체 생산 라인이 멈춰 서는 도미노 쇼크를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이차전지 생산의 필수 소모재인 흑연이나 음극재 원료의 수입 길이 막힐 경우, 수조 원을 들여 지어놓은 배터리 셀 공장은 완제품을 찍어내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된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미세 공정을 돕는 특수가스나 희토류 금속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초대형 팹 라인 전체가 가동을 멈추는 천문학적 손실로 이어진다. 장치 산업의 특성상 공장의 가동 중단은 막대한 고정비 손실뿐만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에 대한 납기 불이행으로 직결되어,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 자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치명타가 된다.
이처럼 원자재 공급망의 단절 위험은 개별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거시경제적 비상사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당수 기업들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과 수익성 확보에 매몰되어 대체 공급선 확보나 재고 비축을 소홀히 해왔으며, 국가 차원의 거대 비축 인프라와 위기 대응 시스템 역시 실효성 있는 통제력을 발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공급망 다변화와 자립화의 결단: 경제 안보를 지켜낼 방패 구축
원자재 특정국 의존도 집중이라는 거대한 아킬레스건을 치료하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다변화와 자립화를 위한 국가적 총력전이 즉각 개시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중국 등 특정 국가에 편중된 수입선을 호주,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자원 부국과의 전략적 양자 협력을 통해 다각도로 분산시켜야 한다. 정부가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안정적인 광물 확보 루트를 뚫어주고, 기업들이 안심하고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통상 안전판을 두텁게 깔아주어야 한다.
동시에, 핵심 원자재의 국내 비축량을 대폭 확대하고 공급망 위기 경보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한편,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재활용)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여 도시 광산으로부터 핵심 광물을 추출하는 자원 순환 생태계를 튼튼히 구축해야 한다. 해외 의존도를 원천적으로 낮추지 못하면 다변화 노력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므로, 국내 기반의 소재·부품 리사이클링 기술 고도화에 과감한 R&D 지원을 투입해야 한다.
원자재 공급망의 취약성을 방치하는 것은 둑에 난 작은 구멍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자원 무기화의 파고가 거세지는 냉혹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공급망 자립화와 다변화라는 방패를 단단히 쥐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제조업이 쌓아 올린 찬란한 성은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경영학박사 · 경제 경영 칼럼니스트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호원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와 《금융소비자뉴스》 주필
이왕로| 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조지아공과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
전북대학교 교수로 30년간 재직. 물리화학, 재료과학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