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세계는 지금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각국은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차, 인공지능(AI) 등 첨단 제조업을 자국에 묶어두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는 중이다. 공장 하나가 불러오는 양질의 일자리, 세수 확보, 협력업체 생태계, 기술 축적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여전히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반면 국내 대기업의 신규 생산기지는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향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현지 시장 공략이나 관세 회피용 행보로만 해석해서는 본질을 놓친다. 기업의 투자는 감정이 아니라 철저한 손익계산서에 의해 결정된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들여다보는 것은 국가의 구호가 아니라 실제 투자 비용과 수익률(ROI), 그리고 미래 현금흐름이다. 자본은 가장 높은 수익과 가장 낮은 위험을 보장하는 곳으로 흐른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냉정한 원리다. 그렇다면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대한민국이 받은 '투자 성적표'는 과연 몇 점일까?
초기 투자 비용의 차이, ‘기반시설’ 지원의 격차
첫 번째 승부처는 '초기 투자 비용'이다. 첨단 제조업은 공장을 짓기 전부터 막대한 자금이 묶인다. 토지 확보와 전력, 용수, 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에만 수천억 원이 들어가며, 복잡한 인허가 과정에서 허비하는 시간 역시 고스란히 기업의 비용으로 쌓인다.
국내의 경우, 산업단지에 입주하더라도 토지 매입비와 인프라 구축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업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입지보조금이 있지만, 규모가 제한적이고 대부분 사후 지원 방식이다. 게다가 전력망 증설과 공업용수 확보, 인허가 절차를 해결하려면 여러 기관을 거쳐야 해 투자 일정이 늘어지기 일쑤다. 기업 입장에서는 삽을 뜨기도 전에 돈과 시간을 동시에 소모하는 셈이다.
해외 국가들의 성적표는 정반대다. 미국 주정부들과 동남아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를 무상 제공하거나 장기 임대해 준다. 도로, 전력, 용수 등 핵심 인프라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구축해 놓는다. 덕분에 기업은 공장 설계와 생산 설비 투자에만 집중할 수 있고, 토지에 묶일 자금을 연구개발(R&D)과 첨단 장비 도입으로 돌린다. 출발선의 비용 구조부터 다르니, 수익률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장부상 공제 vs 즉각적 현금, 지원의 '체감 온도'를 바꾸는 세제
두 번째 승부처는 장부상 세액공제가 아닌 '즉각적인 현금 지원'이다. 대규모 제조업 투자는 초기 몇 년간의 현금 확보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 장부상 순이익보다 실질적인 현금흐름이 더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세제 지원은 대부분 투자 집행 이후의 '세액공제' 방식에 머물러 있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역시 실제 법인세를 납부할 때 유용하므로, 투자 초기 적자 단계에서는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 여기에 취득세, 재산세 등 지방세 부담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결국 기업이 가장 돈이 필요한 시기에는 지원의 온기가 닿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세액공제액이 납부할 세금보다 많으면 그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직접 환급(Direct Pay)' 제도를 운영한다. 일부 주정부는 법인세와 재산세를 10년 이상 면제해 주며, 설비 투자와 고용 규모에 비례해 추가 보조금까지 얹어준다. 장부상 세금을 깎아주는 것과 기업 계좌로 직접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투자 초기의 리스크를 국가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애국심 호소는 끝났다, ‘압도적 제도 혁신’으로 답해야 할 때
국내 대기업의 해외 투자를 애국심 부족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현실 외면이다. 문제는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투자 환경이다. 세계는 기업을 붙잡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 제도를 뜯어고치는데, 우리는 여전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에 기대려 한다. 이러한 낡은 인식으로는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율 몇 퍼센트 만지는 수준으로는 전 세계적인 유치 경쟁을 따라잡을 수 없다. 국가가 부지와 전력, 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직접 책임지고 제공하며, 인허가 절차를 단 한 번에 처리(One-Stop)해야 한다. 동시에 투자 초기부터 숨통을 틔워줄 현금성 지원과 과감한 규제 혁신이 패키지로 움직여야 한다.
기업은 국적보다 수익률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도 자명하다. 애국심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자체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브랜딩해야 한다. 세계가 공장을 품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지금, 대한민국이 진정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애국주의 구호가 아니다. 기업이 떠날 이유 자체를 없애는 압도적인 제도 혁신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